경복궁의 남쪽에 위치한 정문으로, ‘왕의 큰 덕(德)이 온 나라를 비춘다’는 의미로 광화문(光化門)이라 이름 지었다.
1395년 조선 태조 때 창건되어 사정문(四政門)으로 불렀으나 1425년(세종 7) 집현전에서 광화문이라고 바꾸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270여 년 만인 1865년에 재건하였다. 한일합병 후, 1927년 총독부가 경복궁 동문인 건춘문(建春門) 북쪽으로 이전하였고, 그 후 6· 25전쟁으로 소실된 것을 69년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중앙청 정면의 옛터에 복원하였다.
본래의 광화문은 석축기단에 3개의 무지개문〔虹霓門〕을 만들고, 그 위에 정면 3칸의 중층 우진각지붕으로 된 목조문루를 두었다. 그 섬세한 수법과 웅대한 구조는 전체적으로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가장 뛰어난 궐문으로 평가된다.
광화문에는 총 3개의 문들이 있는데, 가운데 문은 왕이 다니는 문이고, 나머지 좌우의 문은 신하들이 다니던 문이었다. 광화문의 천장에는 주작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광화문 건립에서 발굴까지
▪ 1395년 (태조 4년) 조선시대 정궁인 경복궁의 정문으로 창건
▪ 1592년 임진왜란으로 소실
▪ 1865년 (고종 2년) 경복궁 재건하면서 원위치에 보다 큰 규모로 중건
▪ 1927년 일제가 조선총독부청사 신축하면서 현재 국립민속박물관 정문 자리로 이건
▪ 1951년경 한국전쟁 때 피폭으로 문루 소실
▪ 1968년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재건. 도로 사정 고려해 원래 터와 조금 다른 위치에 세움
▪ 2006년말부터 문화재청, 광화문 철거·발굴·복원작업
▪ 2007년 9월 고종 때 광화문 터 발굴
▪ 2007년 11월 태조 때 광화문 터 발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