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12월 6일, 두 달에 걸친 논의 끝에 북아일랜드 6개주를 제외한 남아일랜드 26개주의 자치를 승인한 영국-아일랜드 협정(Anglo-Irish Treaty) 체결로 '아일랜드 자치국'이 건설되었다.
영국 수상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David Lloyd Georg, 자유당)와 아일랜드 신페인당(Sinn Fein)의 지도자 에이몬 드 벌레라(Eamon de Valera)는 아일랜드 독립운동의 기폭제가 된 1916년 부활절 봉기 이후의 영국-아일랜드간 무력 대립 종결과 평화 정착을 위해 이날 협정에 정식 서명함으로써 남아일랜드는 완전 독립의 단초를 마련했으나, 북아일랜드는 지속적인 분쟁의 소지를 남기게 되었다.
12세기 잉글랜드왕 헨리 2세의 아일랜드 정복을 시작으로 두 나라는 오랜 반목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헨리 8세와 엘리자베스 여왕의 아일랜드 직접 통치 시도 및 카톨릭 아일랜드에 대한 프로테스탄트 신앙 강요로 아일랜드는 끊임없는 저항과 반란으로 대항했고, 그때마다 영국은 무력 진압으로 대응했다. 아일랜드의 정치 주권의 완전 상실의 결정적 계기는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의 대두였다. 아일랜드가 나폴레옹의 영국 칩입 전초기지로 활용될 가능성이 대두된 시점에 프랑스의 지원 하에 아일랜드 봉기가 발생하면서 영국은 1800년 '아일랜드 강제 합병'이라는 극단의 조처를 취하게 된다.
아일랜드는 합병 이후 '물산장려운동'과 같은 민족운동을 발판으로 자치정부 수립을 위해 전력을 다했다. 다니엘 오코널(Daniel O'Connell), 아이삭 벗(Isaac Butt), 에이몬 드 벌레라 등을 중심으로 전개된 아일랜드 자치(Home Rule) 운동은 1886년 영국 수상 글래드스턴의 아일랜드 자치법안(Home Rule Bill) 상정으로 현실화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자유당의 표 이탈로 글래드스턴의 아일랜드 자치법안은 부결되었고, 결국 IRA로 대변되는 무력 저항의 가속화를 야기했다.
1921년 '영국-아일랜드 협정' 체결 이후 남아일랜드의 부분적 자치를 수용하는 협약 지지자와 완전 통일론자 사이에 무력 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자치국 수립 이후 아일랜드 정국은 드 벌레라가 만든 피나 게일당(Fine Gael Party)에 의해 주도되었으며, 피나 게일당은 1970년대까지 정권을 장악했다. 아일랜드 공화국은 1937년 제정한 신헌법에 따라 2차대전 기간동안 중립을 유지했으며, 1948년 아일랜드 공화국 행동강령(The Republic of Ireland Act) 선포를 통해 영국 식민지의 잔재를 완전히 청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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