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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교 장로, 독립운동가, 교육가, 평북 정주에서 출생. 숭실대학교에서 수학한 후 신민회에 가입해 민족운동에 종사했다. 신성학교, 성경학교 교사로 재직 중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고 복직해 신천남교회 장로로 장립되었다.
1919년 삼일운동 때 선천의 신성학교(信聖學校)의 교사 홍성익(洪盛益)·김지웅(金志雄)·양준명(梁濬明) 등은 이승훈(李昇薰)의 지시를 받아 기숙사에서 독립선언서를 등사하고 격문과 태극기를 제작하여 3월 1일 선천읍내의 독립만세운동에 앞장섰으며, 당시 성경 과목을 맡았던 그는 1919년 3월 1일 성경 시간에 혈서로 ‘대한독립만세’를 쓰고 독립만세를 부름으로써 만세시위의 불을 당겼다. 그 후 상해로 망명, 임시정부에 가담하여 안동 교통사무국장으로 비밀업무를 수행하던 중 득병하였고 체포된 후 옥사했다. 1963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1911년 9월, 105인 사건' 피의자들이 공판정으로 끌려가는 모습. 일제는 신민회의 주동인물을 포함, 서북지방 민족주이자 700여명을 '데라우찌 총독 암살음모'라는 혐의로 검거하여 1차 공판에서 105인에게 언도를 내린 날조극. 1912년 9월 28일 제 1심 언도에서 양기탁 등 6명은 징역 10년, 차이석 등 17명은 징역 7년, 양전백 등 38명은 징역 6년, 편강렬 등 41명은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