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경기가 중반을 넘어서던 9월5일 팔레스타인게릴라 테러단체인 「검은 9월단」은 이날 새벽 선수촌 울타리를 넘어 들어가 이스라엘 선수들의 숙소를 습격했다. 범인들은 이스라엘 선수중 2명을 현장에서 사살하고 11명을 인질로 잡았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억류중이던 팔레스타인 정치범 2백명의 석방을 요구했고 주최국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는 직접 협상에 나섰으며 경기는 중단됐다. 테러범들은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인질 11명을 데리고 뮌헨공항으로 장소를 옮겨 인질극을 계속했다. 결국 서독 무장경찰(이스라엘의 모사드 라는 말도 있음)의 진압작전과 함께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졌고 테러범들은 수류탄을 터뜨려 11명의 인질 전원과 테러범 5명, 서독경찰 1명등 모두 17명이 사망했다. 이 비극적 사건은 텔레비전으로 시종 전세계에 생중계돼 수억 세계 인구를 경악케했다.
검은 복면으로 몸을 감싼 무장 게릴라가 올림픽 선수촌을 습격하여 이스라엘 선수 둘을 사살하고 아홉 명을 인질삼아 경찰과 대치한 것이다. 그들은 ''검은 9월단''이라는 가장 과격한 팔레스타인 게릴라 조직의 전사들이었다.
평화의 제전은 순식간에 팔레스타인 아랍민족과 이스라엘 시온주의자 사이의 격렬한 증오와 투쟁의 무대로 돌변하였다. 게릴라들은 결국 모두 사살되고 말았지만 팔레스타인 문제를 더없이 충격적인 방법으로 인류 앞에 제기하는 데 성공했다. 9월 8일 이스라엘 공군은 시리아와 레바논에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촌에 무차별 폭격을 퍼부었다.
이 사건은 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팔레스타인 무장 게릴라와 이스라엘 정부가 수없이 교환한 테러와 보복공격을 가장 명료하게 극적으로 보여 주었다. 잊을 만하면 또다시 신문 외신면에 대문짝만하게 보도되곤 했던 크고 작은 폭탄테러와 이스라엘의 보복공격은 본질적으로 이 사건과 맥락을 같이 한 것이며, 이스라엘과 인접 아랍국가 사이의 끊임없는 무력충돌 역시 같은 이유로 일어난 것이다.
팔레스타인은 그야말로 중동의 화약고이며, 그 화약고가 폭발할 때마다 기름으로 가득한 중동 일대에는 으레 화염이 치솟았다. 이집트, 레바논, 시리아, 요르단, 사우디 아라비아, 이라크 등 아랍국가들의 정치체계의 차이점과 각국의 역사적, 문화적, 종교적 특수성 때문에 중동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를 명확히 이해하기는 몹시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