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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화룡은 토명으로 화룡욕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화룡 개발초기 조선사람들이 부르던 이름이다. 화룡욕(?)이란 만족어로는 두산이 한 골짜기를 끼고있다는 뜻이다. 화룡은 달라즈, 삼도구라 불리기도 했다. 광서 10년 즉 1884년에 중국과 조선이 서로 래왕하면서 상부지로 개방되였으며 광서 28년(1902년)에는 연길부의 관할하에 귀속되였다. 1910년에 화룡현을 설치하였는데 그 당시 현소재지는 달라즈(지금의 룡정시 지신향)였으며 1940년에는 삼도구로 소재지를 옮겼다. 삼도구란 오늘의 화룡진이다. 옛날의 화룡현은 해란강을 경계로 지금 룡정시에 귀속된 해란강 남부와 화룡시 귀속된 해란강 남부 지역이다. 해란강 북쪽 지역은 연길현이였다. 또 비암산을 경계로 서쪽은 화룡현, 동쪽은 연길현이였다.
화룡시
화룡시는 연변의 남부,두만강의 상류에 있으며 두만강을 사이두고 조선의 함경북도와 양강도와 마주하고 있다.시 산하에 4개 사업소,10개 진,5개 향 159개 촌이 있고 총면적은 5044평방키로미터이며 인구는 24만명인데 조선족이 60%를 차지한다.
화룡시는 처음 용정시에 속하였다가 독립되였으며 화룡이란 《두 산이 한 골짜기를 끼고 있다》는 뜻의 만주어라고 한다.
화룡시는 백두산의 동쪽기슭이라 높은 산과 험한 봉우리가 있어 임업자원이 풍부하고 석탄,화강석,대리석등 광물자원도 풍부하며 농업도 대단히 발달하여 잎담배,아마,사과배등이 유명하며 특히 평강벌의 쌀은 우수하기로 널리 알려져있고 또 숭선과 로과 두 곳의 통상구가 있어 북한과의 무역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한국인에게는 북한을 가장 가까이 볼수 있어 인기를 끌며 또 정효공주의 묘와 고구려때 쌓았다는 성자산산성과 발해때 쌓은 ,서고성이 있고 그밖에 원시주민부락터도 있다.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청산리싸움터도 여기에 있어 우리민족이 많이 찾을 곳이다.
특히 숭선은 그 산천이 너무 아름다와 꼭 한번 찾을만한 곳이다. 그리고 두만강발원지와 선경대,전초 조어대(▩魚坮)도 한번쯤 가볼만한 곳이다.
 [화룡선경대 ----------------성자산산성(城子山山城) ]
화룡시 동쪽에 있는 유적으로, 13세기에 요동반도(遼東半島.료둥빤도)를 지배했던 지방정권인 동하(東夏)가 1215년에 축성(築城)한 것이다.동하는 국호를 대진(大眞)이라고 칭한 나라인데, 1233년 몽골군에 의해 멸망하였다.현존하는 성벽은 둘레가 6㎞정도이고 성내에는 초석이나 건물의 유적이 남아 있다.이곳에서는 최근에 동하의 관인(官印)이 2개 출토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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