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평면주의 일변도의 신학 연구에 대해 20세기 초엽 독일의 칼 바르트가 수직주의적인 신학 연구를 제시함으로 현대주의 신학이 시작되었다. 헤겔의 역사주의와 슐라이엘마허의 주관주의의 영향으로 스트라우스는 예수만이 참 진리의 원천이 될 수 없음은 진리는 역사의 한 지점이나 한 개인에게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리츨은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였느냐?'에 관심을 갖게 함으로써 기독교를 평면적인 값싼 실용주의로 이끌려 하였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슈바이쳐는 예수의 모든 교훈과 생애를 종말론적인 것으로 해석하며 역사적 예수 연구에 있어서 수직주의를 향한 방향을 보여 주었다. 이렇게 하여 신학의 초점이 역사에서 참 역사로 옮겨지게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이성주의와 정통주의에 반대하고 일어난 것이며, 전통적인 것에 대한 새로운 경향이므로 '현대주의'라 하게 된다.
바르트는 역사적 차원만을 주장하는 자유주의 신학을 반대하며 초역사적 차원을 강조하고 나섰다. 불트만은 현대인의 사상 패턴이 실존주의적인 것으로 전제하고 현대인에게 영합이 되도록 기독교 진리를 비신화화하여 거기에 실존주의의 옷을 입혀 세상에 내놓았다. 본회퍼는 더 나아가 존재론적 입장에서 보는 신관을 외면하고 실용적 입장에서 보는 그리스도관을 중시하는 데에 있다. 그의 신학의 방향은 수직적인 면을 외면하고 평면적인 면만을 강조하는데에 그 특색이 있다. 그에 따르면 교회의 사명은 영혼 구원을 위한 선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참여를 통한 사회 개혁에 있는 것으로 말한다.
그러나 신앙을 전제하지 않는 어떠한 이웃을 향한 고상한 사랑도 기독교적 사랑이 되지 못한다. 현대신학은 틸리히에서 신학적 확인을 받게 된다. 그는 기도교의 인격적 존재로서의 신관을 배격하고 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끌어내려 실존의 옷을 입혀 존재의 지반이란 밑창으로 내려 보내고 만 것이다. 현대인은 소외성을 물질주의, 향락주의로 메꾸려 한다. 그러나 인간은 이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여기서 '새존재'의 필요성이 생긴다. 그리스도 안에서만 새존재로서의 인간 소외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다. 틸리히는 주어진 성경적 진리를 조직적으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자기의 조직적 신앙 체계 속에 성경적 진리를 부합시키려 한 것이다. 그의 사상이 계시를 판단하는 표준이 되어 버렸으며, 그는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 실존주의의 옷을 입혀 버리어 한갖 철학적 관념론에 그치고 만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