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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07-01-22
 제목  윌리스 M. 그린필드(Greenfield, M. Willis, 權弼斗,權日斗) 선교사
 주제어  [내한 선교사] [양화진 선교사] 전도여행
 자료출처  양화진선교회  성경본문  
 내용

윌리스 M. 그린필드는 1907년 9월 15일 부인(Maud Saxe)과 함께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로 내한했다.
그는 1908년 3월 서울에서 경신학교 교장 서리로 취임하였으며, 다음해인 1909년 사임했다.

1908년 11월 11일 숭신방(명륜동)에 이석진 조사를 파송하여 숭신예배처소(명륜 중앙교회)를 마련했다. 조선 예수교장로회 사기에 의하면 같은 해 청송군 수락(水洛)교회를 설립하였으며 예배당도 건축했다는 기록이 있다. 1910년에는 구미 옥계교회에 약 15평의 토당 초가 예배당을 건축하기도 했다.

1911년 이후에는 대구지역 선교부로 옮겨 경상북도 지방에서 폭 넓은 전도 활동을 하다가, 1911년 12월 6일 경상노회(慶尙老會)가 설립되면서 선교사의 선교 구역은 12개로 분구(分區)되어, 그린필드 선교사는 칠곡, 포항, 경산 등지에서 전도 활동을 하게되었다.

1911년 칠곡군 남율(南栗)교회를 설립하고, 이사윤(李士允)조사로 하여금 시무 하도록 했다. 그는 특히 한국에서 시골길의 장거리 전도여행 기록보유자로 알려져 있다. 예를 들면 1913년에 경북지방에서 180여일 동안을 시골마을과 산길을 두루 걸어다녔는데 그 도보(徒步) 거리가 무려 6천리(1530마일, 2,461km) 이상이었으니, 참으로 열정적인 선교사였다.

1914년에도 열심히 전도한 결과 영일군 대전(大田)교회를 설립하는데 기여했으며, 같은 해 경산군에 조사와 권사, 임시전도사를 대동하고 김처진(金處鎭) 씨 집에 임시전도소를 마련하고 전도에 힘을 써, 경산군 경산읍 교회도 설립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는 동안 1909년부터 1914년 사이에 교육과 전도에 관한 주제로 8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의 논문 중에 1913년 10월 선교잡지(The Korea Mission Field)에 게재한 '대구지역 선교사업의 의의와 전망'에 관한 논문에서, "지나간 세월에 어둠 속에서 지내던 한국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하심과 손길을 통하여 선교사로 하여금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한국인에게 기쁨과 희망을 안겨주었다. 한국은 기독교 국가가 이를 때까지 하나님 도움이 계속 될 것이다."라는 어록(語錄)을 남겼다.

그 후 1916년 6월 5일 장로회 선교사직을 사임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귀국한 뒤에는 대구에서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로 활동(1908-1914)하다가 귀국한 밀즈(Mills, Anna Rae) 여사와 재혼하여 여생을 보냈다.

 

 

 

>> 목차고리 : 신학 > 선교 > 선교사

>> 연결고리 : 내한 선교사, 양화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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