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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07-01-22
 제목  호머 헐버트(Hulbert, Homer Bezaleel, 訖法 또는 轄甫, 1863-1949) 선교사
 주제어  [내한 선교사] [양화진 선교사] 감리회 문서 선교사 YMCA, 아리랑
 자료출처  양화진선교회  성경본문  
 내용

호머 헐버트는 1863년 1월 26일 미국 버몬트에서 목사의 둘째 아들로 태어했다. 1884년 다트마우스(Dartmouth) 대학을 졸업하고, 유니온 신학교 재학 중 육영공원(育英公院) 교사로 1886년 7월 4일 내한하였다.

그는 1886년 9월 23일 개원한 육영공원의 운영과 교육내용 및 방법에 관한 규정으로 “育英公院 設學節目”을 제정했다. 학생들이 세계 지리(地理)에 관심을 보이자 1889년에는 <士民必知>를 한글판으로 발행했다. 이 책은 많은 학교에서 필수 교재로 사용되었다. 1891년 12월 교사직을 사임하고 일시 귀국했다가 1893년 9월 감리회 선교사로 다시 내한했다.

1901년 <코리아 리뷰>를 창간하고, 미국 감리회 운영의 ‘삼문출판사’ 책임자로 문서 선교에 힘썼다. 그는 1906년에 발간한 “대한제국 멸망사(The Passing of Korea)”에서 한국인의 기질에 대하여 “한국인은 합리주의적 기질과 감정이 가장 알맞게 조화되어 있으며, 냉정과 정열이 함께 갖추어져 있다. 평온 속에서 냉정을 잃지 않을 줄 알고, 또한 격노할 줄도 안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한국이 살아갈 방도는 교육뿐이며, 한국을 정복한 민족(일본)과 대등하게 될 때까지 교육에 전념해야하며, 순수한 인간성을 무기로 능력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교육 선구자로서 23년 간(1886-1909) 봉직하면서 한국의 문화, 역사 등 각 분야에서 한국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린 열정적 선교사였다.


◇ 한국 YMCA 창설과 고종황제의 외교고문으로 활동 

그는 유능한 한국의 청년들에게 근대적인 사회 개혁 의식을 불어 넣고, 교육과 계몽 그리고 복음화를 목표로 삼고, 그 목표를 실현하는 방안으로 한국 YMCA 창설을 착안했다.

1903년 3월 7일 YMCA 설립자문위원회에서 위원장과 1903년 10월 18일 창립총회(황성기독청년회) 때에는 의장으로 회의를 진행했다. 한편 한국의 국권 회복을 위하여 고종황제의 외교고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05년 10월 한국의 외교권과 재정권이 박탈되고 일본의 한국 병합이 구체화되자 고종황제의 밀사로 워싱턴에 파견되어, ‘한미수호 조약’에 따라 도움을 요청하는 친서를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전달하려 했으나 일본의 한국지배를 묵인하는 ‘가츠라-태프트 밀약’ 등으로 면담은 실패했다.

또한 1907년 4월 이준·이상설·이위종 등 네덜란드 헤이그(Hague) 만국평화회의 파견 밀사로 활동 했다. 이 같은 그의 적극적 정치 외교 참여를 일본 정부가 못 마땅하게 여겨 1908년 미국 정부의 소환 형식으로 한국을 강제로 떠나야 했다.

그 후 선교사 직을 은퇴하고 매사추세츠주 스프링필드에 지내다가 1949년(8·15 광복 후) 이승만 대통령의 국빈 초청으로 다시 내한했다. 그러나 86세 고령에다 여러 날의 여독(旅毒)으로 1949년 8월 5일 서울 위생병원에서 별세하고 말았다.

그는 외국인 최초의 사회장(社會葬)으로 양화진 제1묘역(나-9)에 8월 11일 안장되었으며, 1950년 3월 1일에는 건국공로훈장(獨立章)이 추서되었다. 묘비에는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고 자신의 조국보다 한국을 위해 헌신한... ”이라는 추모비와 “나는 웨스트민스터 성당보다도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I would rather be buried in Korea than in Westminister Abbey)”는 어록이 있다. 


◇ 어린 나이로 양화진에 묻힌 헐버트 2세

양화진 제1묘역(사-11)에는 헐버트의 아들 묘지도 있다. 비문에는 1896년 2월 출생하여 1897년 3월 사망한 셸던 헐버트(Sheldon Hulbert)라 기록되어 있다. 그는 겨우 1년을 살다가 죽고 말았다.

박수길은 <아리랑을 부른 헐버트>라는 글에서 “구전으로 전해오던 민요를 서양식 악보로 기록한 것은 헐버트 선교사에 의해서다” 한국학 연구지(Korea Repository)에 ‘Korea Vocal Music’이라는 제목으로 헐버트가 아리랑의 악보와 가사를 실은 것은 1896년 2월에 태어난 아들이 생후 1년 만에 죽게 된 슬픔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헐버트는 1888년 9월, 한나(May B. Hanna)와 결혼하였으며, 그 부인은 1948년 11월 별세했는데 2남 3녀의 자녀를 낳았다. 성장한 다른 아들 헐버트 2세 윌리엄 체스터는 서울에서 출생하여 1986년 별세하였다. 그리고 3세(손자) 리차드는 2002년 미국에서 죽었으며, 4세(증손자) 킴벌리(KimbAll A.)는 현재 콜럼비아 대학에서 국제 정치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2004년 8월 5일 헐버트박사 55주기 추모식 때에 양화진을 방문하여 유족 인사를 하였다.

 

 

>> 목차고리 : 신학 > 선교 > 선교사

>> 연결고리 : 내한 선교사, 양화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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