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권의 부흥



 

   “차도르를 쓰고 학교에 갈 수 있게 해달라.”
   6월15일 이슬람권과 유럽의 교차점인 터키 이스탄불에서는 차도르와 전통 이슬람복장을 한 시위대와 경찰 사이의 작은 충돌이 발생했다.  시위대는 경찰의 강제진압 위협에 떠밀려 자진해산하긴 했지만, 심심찮게 발생하는 이런 시위가 물리적 격돌로 발전해 사상자를 내기도 한다.
 

   또 지난 1월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해산당한 이슬람복지당 관계자들은 최근 미덕당으로 당명을 바꿔
조직재건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이들은 재창당의 과도기인데다 당수였던 에르바칸이 국회의원직을 박탈당한 뒤 헌법재판소 모독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미묘한 시점인 탓인지 외부와 접촉하는 것을 매우 꺼렸다.
 

   국민의 98% 가량이 이슬람을 믿는 국가에서 전통 옷차림을 이슈로 시위를 벌이고 이슬람 정당의 문을 닫게 만드는, 이해하기 어려운 풍경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으로 유럽국가를  지향하는 터키 정부와 이슬람 근본주의를 표방하는 세력이 빚는 갈등의 대표적인 단면이다.  양쪽의 갈등은 국민들의 가슴에도 심한 생채기를 남겨 이슬람에 대해 말을 꺼내는 데 대해  알레르기반응을 보일 정도였다.
 

   정부 강경대응의 배경에는 이슬람에 대한 호소가 가진 엄청난 영향력과 이슬람의 부흥에 힘입은
근본주의세력의 급성장에 대한 우려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근본주의세력은 연립의  형태로나마 집권경험까지 갖게 됐고, 국내외 이슬람자본으로 구성된 일라스그룹은 터키 경제가 곤두박칠치고 있는 와중에도 매출액이 해마다 2배 가량 늘어나 30대그룹에 진입하는 등 고속성장을 거듭했다.
 

   탈냉전시대로 접어들면서 이슬람은 알제리 아프가니스탄 이집트 등 중동과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부흥되고 있다. 기존체제에 대한 부정으로 이슬람에서 `해답'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70년대부터 시작됐고 이란혁명이 그 기폭제가 되기도 했으나, 잠복기를 끝낸 90년대 들어 냉전이데올로기의 공백을 틈타 본격적으로 터져나온 것이다.
 

  이집트 한 대학에서 경영학 석사과정을 마친 뒤 취업전선에 뛰어든 하산(28)은 “무바라크 정부에 대한 반감이 광범위하게 확산됐고 이슬람은 탈출구를 찾지 못한 지식인층의 훌륭한 대체이념으로 환영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이슬람의 부흥은 곧바로 이슬람과 극단적인 근본주의를 동일시하는 서구의 강도높은 반작용을 불러왔다. 서구의 정계와 학계 한쪽에선 이슬람을 옛소련의 뒤를 이은 제1의 적으로  인식하고, `이슬람의 위협'이라는 말은 흔히 사용되는 보통명사가 됐다.
 

  이런 시각을 가장 극적으로 표현한 것이 새무얼 헌팅턴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의 `문명충돌론'이다. 헌팅턴은 탈냉전 시대에 국제관계를 규정하는 최대의 변수로 서로 다른 문명권 사이의 충돌을 꼽았다.
특히 십자군전쟁으로 대표되는, 종교간의 뿌리깊은 대결의 역사를 가진 이슬람과 서구는 공산주의라는 공통의 적이 사라진 뒤 가장 심각한 적대관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진행형인 코소보사태는 물론 지난 93~94년 다른 문명에 속한 집단사이의 분쟁 20건 가운데 15건이 이슬람교도와 비이슬람교도 사이에서 발생했다는 등의 통계치를 제시하면서“이슬람의 경계선은 피에 젖어 있다”는 식으로 이슬람의 폭력의존성을 부각시켰다.
 

  이슬람권은 거세게 반발했고, 에드워드 사이드 미국 컬럼비아대 석좌교수 등 이슬람 전문가들도  일제히 반격에 나섰다. 터키와 이집트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도 헌팅턴을 “정신나간 사람”새로운 트러블메이커” 등으로 비난했다.

 
  모하마드 셀림 이집트 아시아연구소장은 “이슬람권 국가들의 국내총생산액을 다 합쳐도 전세계의
6~7%, 미국 한 나라의 25% 수준에 지나지 않고, 군사적으로도 핵무기와 첨단기술, 무기감시체계를
서구가 거의 독점하고 있는데 어떻게 이슬람이 서구에 위협이 될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다만 테러라는 `조그마한 혼란'이 있을 수 있으며, 서구에 고개를 숙이지 않는 이슬람이 제3세계의 본보기가 되는 것을 경계할 가능성은 있다고 덧붙였다.
 

  이슬람과 서구의 이런 현격한 견해차가 지금까지 양쪽의 관계를 지배해왔고, 현재로선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을 근거 또한 별로 없다.  양쪽은 관계 재정립의 실마리를 근본주의단체의 테러포기나 미국의 이스라엘 일변도 중동정책 수정 등 상대방의 태도변화에서만 찾고 있을 뿐이다.
 

 “지난 200년 동안 서구를 어떻게 볼 것인지, 어떻게 관계를 맺어나갈 것인지가 우리의 최대과제였다”는 셀림 소장은 “이슬람과 서구가 전혀 대등하지 않은 역학구조 속에 놓여 있는데다 미국 일극화시대인 지금 미국이 이슬람을 고려한 절충방안들을 대부분 거부하고 있어  관계개선이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우리로서는 대화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대안이 없으며, 서구와 대결해서 얻을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면서 “10년 이내 등 단기간으로 보면 비관적이지만 서구쪽에서도  균형있는 관계를 이루려는 지적 움직임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문명의 `충돌'이 아닌 `대화'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런 측면에서 여러가지 한계는 있지만 20년 가까이 경제제재를 해오던 미국이 최근 빌 클린턴 대통령까지 나서 이슬람근본주의의 `대명사'인 이란에 `화해의 손짓'을 보내고 하타미 이란 대통령이 개방정책 추진에 적극 나선 것은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