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마가복음에서 예수의 반(反)의식주의의 사상

구 절 : 막7:1-23
    A. 마가복음 7:1-23의 자리

         이 자료의 형식은 2:1-3:6에 나오는 다섯개의 논쟁기사 자료와 매
우 흡사하며 연결성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은 6:14-8:26의 이방선교의
부분에 자리잡고 있는 논쟁기사의 중심에 위치하며 이방인에게 은혜를 베푸
시는 세편의 이적기사에 앞서 나오는 형식상의 전주곡 역할을 한다.  이 부
분에서 부정,전통(유전) 그리고 실제 문제에 관한 일관성있고 연속성  있는
관심은 7:1-23을 하나의 단원으로 다루어야 할 마가의 의도를 엿볼  수  있
다.

    마가복음 7:1-23을 세단락으로 나누어 보면 첫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의 비난과 예수님의 첫번째 답변(1-8),둘째 서기관의 유전이 율법과 상충하
고 있다고 하신 예수의 역비평(9-13) 세째 참으로 부정함이 무엇인가에  대
한 해석(14-23)등이다. 그러므로 이 논쟁은 예수님과 공인받은 율법의 해석
자들과의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무엇인가를 보여주며 예수의 반-의식주의
적 사상의 정곡을 찌르는 말씀을 보여주고 있다.

    B. 본문에서 의식주의에 대한 예수의 태도

       1. 정결법 문제

          2절은 예수의 제자중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먹는
것을 언급한다. 여기에서 마가는 깨끗한 식물에 관한 바리새인들의  정결주
의를 보존하고 있다. 마가복음에 나타나는 제의적 부정의 문제에서  예수는
문둥이와 접촉(1:41), 혈루증을 앓은 여인과의 접촉(5:27-30), 죄인들과 세
리와의 자유로운 접촉들을 통해 부정의 문제에 정면 도전하였다.  무엇보다
예수의 사상에서 핵심은 인간성이 배제될 수 없음을 강조하는데 있다.

    본문에서 제의적 부정의 문제는 깨끗한 식물과 깨끗지 못한 식물의  구
별과 취식법에서 드러난다. 제자들 중 몇명이 씻지 아니한 손으로 먹은  것
이 부정함의 원천을 나타내어 장로들의 유전을 범한 것이  되었다.  당시의
서민들이 죄인들이라고 배척당한 이유는 그들이 제의적 정결에  무관심하였
다는 것이 이유이었다.  여기에서 제사장이 성막에 들어가기 전에 손과  발
을 씻어야 한다는 결례는 생활 조례의 기초가 된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제사장의 정결법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여 아침  기도
전에 규칙적으로 손을 씻었다. 만약 부정해진 다음에 레위적 정결의 회복을
얻으려면 물로 씻어야 할 필요가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일상적인  제의적
결례인 손을 씻는 법을 언급하였는데 이 결례는 음식먹기 전에  공식적으로
요구되는 절차였다.  그 방법들은 물을 부어 손을 씻는  방법,물을  뿌림과
목욕이나 손목까지 담그는 형식들이 있었다.

    예수는 8절에서 제의적 결례로서 정하게 될수 없는 더욱 깊은 곳에  근
저를 두고 있는 부정의 원천에 관한 문제를 말씀하신다. 예수는 부정의  원
천이  하나님의 계명을 저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려고 하는데 있다고 말
씀하셨다.

    그러므로 예수에게 쿰란의 부정한 것을 거부하거나 배척하는 모습을 찾
아볼 수 없고 오히려 그들의 의식주의에 반대하고 계신다. 예수의 제자들은
자발적이었고 규율의 파괴로 부정하다고 출회하는 것과 같은  모습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예를들어 마가복음 14장의 최후의 만찬에서도  손씻음이
성찬의 본질적 요소가 결코 아니었음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2.부정의 문제

          마가복음의 정결법 논쟁은 예수의 제자들이 음식 전에 손을 씻지
않고 먹었다는 데서 발단된다. 이 부분의 식사 규정은  분명히  에센파들의
식사 규정을 반영한다.  물론 랍비 규정에도 미쉬나 제6부 "정결에 대하여"
에 손 씻는 것을 규정한다. 마가는 정결법의 전통들이  있다고  소개함으로
"장로들의 유전"이 율법적인 권위를 갖고 있었음을 말한다.

    바리새인들은 예수와 그 제자들이 이런 규정을 무시하고 장로들의 유전
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이에 대한 예수의 답변은 음식과 인간관계에
대해 근본적인 관계를 제공한다. 예수는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 들어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안에서  나오는  것이  ......더럽히느니라"
(7:15-16)고 한다. 여기에서 예수는 물질적 정결과 도덕적 정결을 날카롭게
대조하여  손을 씻지 않고 먹어도 식물이 사람을 부정하게  못한다고  하였
다. 왜냐하면 부정은 외부적 원인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재적  원인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는 마음의 정결없이 제의적 정결을 행하면 진정한 정결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자들의 망상을 비난하신 것이다. 예수는 음식결례에 관한 논쟁
에서 "모든 음식을 깨끗하다(7:19)"고 결론지으므로 예수와 바리세인의  논
쟁은 구약에 있는 음식법을 근본적으로 흔들어 놓은 것이었다.

    예수는 구약의 정결법의 규정이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불순종을 판가름
하기 보다는 인간에게 좋은 길을 가르쳐주는 인도적인 것임을 강조한다. 그
래서 이 전통은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라 인간의 사정을 고려해서 제정된 법
일 따름이다. 이러한 예수의 입장을 밝혀주는 것은 "고르반"(7:11)에 있다.
예수는 랍비들의 가르침이 법조문의 형식적인 적용과 위선적 실행임을 폭로
하고 있다.

      3.예수 사상의 독자성

          음식과 인간의 관계는 제자들과의 대화속에 첨가된다.  여기에서
예수는 음식 규정이 안식일 규정과 같이 사람들을 위해 제정된 것이고 음식
이 사람을 부정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치신다.

    예수는 "장로의 유전"(막7:5-)을  인정하였고  손  씻는  정결법  문제
(7:1-8), 고르반(7:11), 안식일 논쟁(2:23), 이혼 맹세  반대(마5:31-37)의
구전 율법을 인정하셨다. 그러나 이 규정들이 진정한 권위적 율법이 아니고
"사람의 규정"이라고 부르며 더 높은 원리로서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
고 하신다.

    이 정결법에서도 궁극적인 것은 결국 인간은 누구이며 그의 생명의  근
본은 무엇인가 이다. 이것이 예수 사상의 독자성을 형성시키는 것인데 마음
은 인간의 주체성으로 인간은 육체가 아니라 마음이다.  사람의 마음속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마음에서 나오는 행위들이 사람을  부정하게
만든다. 이러한 부정과 정결의 문제에 대한 예수의 해명은 근본적으로 서기
관과 바리새인 그리고 쿰란과 다른 차원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인간의 책임성과 인격성을 교훈하시어 "식물은 다  깨
끗하다"고 하신 것이다. 이런 예수의 사상을 쿰란문서의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아무데도 없다.

    C.쿰란의 의식주의와 예수의 반제

       쿰란공동체는 무엇보다 율법에서 세웠던 규정 그리고  그의  율법의
해석으로 부터 이끌어낸 의식과 제의들을 매일 ,매시간, 매주, 매년,  안식
년마다 준수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중에서 쿰란 공동체에서의  일상적으로
삶의 의식들중에 정결법과 의식주의의 복합은 특별히 중요한  역할을  하였
다.

    하르낙은 쿰란인들을 두고 말하기를 "이 무리들은 결코 욕조로 부터 밤
이고 낮이고 나오지 않으려 했다"고 하였다.  그들은 세례를 너무 좋아했기
에 그들이 부정한 어떤것을 생각하거나, 말하거나, 보거나, 만지면 곧 그들
은 욕조로 들어가 정결례를 행한다.   그들은 의식적으로 누군가가  자기를
만지기만해도 자신들을 욕조에 항상 두려고 하였다.

    그런데 슈타우퍼는 "예수의 메시지에서 이와같은 의식주의의 모습을 어
디에서 발견할 수 있는가? 아무데도 없다"라고 예수사상과  관련이  없음을
주장한다.  예수는 그 시대의 음식 규례 뿐만 아니라 정결례를 얼마나 비판
적으로 보았는가? 이에 대한 예수의 사상은 위의 마가복음7:1-23을  분석을
통해 볼 때 자명해진 것이다.

    여기에서 쿰란과 예수사이의 대립적 요소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이 요
약될 수 있다.

 첫째로 근본적인 면에서 쿰란은 닫혀진 종파(a closed sect)이었다.  그들
의 입회는 엄격한 판단의 과정이 있었고 의식주의적  정결례로  종파의식을
확립하였다.  그러나 예수는 모든 자에게 은혜로운 초대를 하였고 그들에게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진정한 마음의 정결인 회개를 요구하였다.  예
수는 복음의 우주적 확장을 위해 열려진  세계를  주장하였다.(마11-28-30;
28:19-20)

    둘째로 쿰란은 엄격한 율법주의를 택하였다.  그러나 예수는 바리새 율
법주의를 폐지했고 율법의 본질적인 의도를 찾으려고 하였다.(막2:23-28)

    세째로 쿰란의 삶의 방식이 의식주의적 활동과 의식적 정결의  지배 속
에 있었지만 예수는 단순한 형식주의 보다는 영적인 원리를 주장하였다.(막
7:1-23) 그러나 쿰란의 금욕주의적 성격은 입교자에게 2년의 기간후에 입교
의식을 행하였지만 예수는 믿음의 고백을 통해서 공동체의 일원 이 되게 하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