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쿰란의 공동체와 세례요한

구 절 : 막7:1-23
    A. 쿰란공동체와 세례요한

      1. 쿰란과 세례요한의 관계성

          의의교사 출현이후 1세기 만에 유대광야에 다른 예언자 세례  요
한의 출현은 새로운 길을 여는 희망이었다. 그런데 쿰란 공동체와 세례  요
한 사이의 관계성은 중요한 의미가 있는데 이들 사이에는 많은  연결점들이
있다.

    첫째 세례 요한의 광야에서의 영적인 활동과 쿰란  공동체의  연속성이
다. 무엇보다 요한은 광야에서 자랐다(눅1:80). 광야는 예루살렘-헤브론 도
로와 사해사이에 위치한 메마른 지역이다. 이 광야의 삶의 장소중 한  곳이
쿰란이기에 요한이 쿰란에서 성장했다는 것은 가능하다.  그런데 4복음서에
서 요한의 상은 연속적이며 모순적인 자료는 없다.

 복음서에 나타난 요한의 모습에서 볼 때 쿰란과의 차이점은  요한의  옷이
쿰란의 흰 린넨천의 옷이아니었고 그의 음식은 에센의 것이 아니었다. 또한
요한의 아버지 스가랴는 제사장 가문으로 예루살렘성전에 속했던 점에 비추
어 볼 때 반-예루살렘적인 쿰란에 보냈을리가 없다.

    둘째 세례 요한의 사명과 쿰란의 성전회복을 갈망사이의 유사성으로 동
일한 사40:3의 인용이다.  이들은 동일하게 광야에서 길을 예비하는 사명으
로 동일내용과 표현으로 인용되었다. 그런데 쿰란에서 "길을  예비하는  것
은" 신비의 교훈을 받고 자신들을 불의한 자들로 부터 분리시키기 위함이었
고  "길"은 모세에 의해 명령된 율법을 채는 것 이었다.

 그리고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는 표현은 쿰란문서에  나타나
지 않는다. 한편 요한에게 "길을 예비하는 것"은 광야의 은둔생활을 청산하
고 회개의 복음 설교를 준비하는 것을 의미했고 "길"은 단순히 율법을 추구
하는 것이 아니라 메시야를 위한 백성의 준비였다. 이 일을 위해 요한은 광
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였다.(눅3:3-17)

    세째 세례 요한의 검소한 금욕 생활은 쿰란의 생활과 일치되는 점이 있
다 그러나 쿰란에는 공동식사가 있었지만 궁핍하였다는 기록은 없다.  또한
그들에게는 토라를 읽는 것이 경건한 삶의 훈련이었고 나실인의 요소가  있
었다고 주장될 수 없다.

    네째 세례요한은 물세례를 준자로 쿰란 공동체 안에서도 정결례를 베풀
었다.

      2.쿰란의 정결례와 세례 요한의 세례

         a.세례요한의 세례의 특징

            위의 특징 중 쿰란과 세례 요한의 관계를 세례 중심으로  본다
면 한층 더 깊은 관련성을 엿볼 수 있다.  요한은 그의 세례에 관한 사상을
어디에서 갖게 되었는가? 하는 점이 중심 논제가 된다. 그런데 요한의 세례
에서 청중들에게 요구된 것은 청중들이 회개할 것, 세례를 받을 것과  의로
운 삶을 살 것등 세가지였다.

    첫째 요한의 메시지는 회개의 물세례로 특징지을 수 있다. 요한에게 있
어 회개는 악에서 돌이키는 것과 하나님을 향해 돌아서는 것의 두가지 의미
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요한이 청중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아'라
고 말한 것은 이런 배경을 갖고 있다.

 둘째 그의 요구는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으로 의로운 삶은  위로는
하나님께 대한 경건과 이웃들에 대한 정의를 말하며 회개의 근본적  열매로
보았다.

 세째 요한은 물세례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쿰란공동체가 살던 주거지에는 세례를 위한 저수지의 유적이 남
아 있어 청결케 하는 의식을 아주 중요하게 여겼다. 그들은 제사장적  정결
을 유지했고 모든 불결한 것을 피하려고 노력했으며 매일 몸을  씻음으로서
필요한 정결을 얻으려고 하였다.

         b.둘사이의 차이점

            세례요한의 세례는 회당에서 개종자들에게 준 세례와 어느정도
관련이 있다. 그러나 요한의 세례는 개종자 뿐만아니라 모든  유대인들에게
도 이 의식을 적용시켰다는 점에서 독창적이다.  그래서  쿰란의  정결례와
세례요한의 세례사이의 차이점에 관한 것을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다.

    첫째로 쿰란의 정결례는 입회자에게만 주어 졌으나 요한의 세례는 누구
에게나 주어진 것이다.

 둘째로 쿰란의 정결례는 2년간의 견습 기간이 끝나야 주어진 것이지만  요
한의 세례는 회개하고 고백되었을 때 즉각 주어진 것이다.

 세째로 요한의 세례는 메시아의 오심과 관련되지만 쿰란 문서에서는  정결
례를 의의 교사와 관련시키는  종말론적 측면을 볼 수 없다.

    이외에도 필자는 쿰란의 세례는 반복적이고 의식적이지만 세례  요한의
세례는 일회적이라는 면에서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복
음서에서 요한의 세례 언급에서는 반복적이라는 단서를 찾아볼 수 없고  회
개와 관련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c.요한 세례의 독창적 성격

          위에서와 같이 쿰란정결례와 세례 요한의 세례사이에는 유사성과
상이점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요한의 세례의 기원과 성격은 어디인가? 쿰란
의 정결례와 회당의 개종자 세례는 부정한 것을 씻는 것이었다. 그러나  요
한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야 하는 하는 자들에게 누구에게나 준  세례이었
다. 그래서 그는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요8:33)

    그런데 의식주의적 목욕 혹은 세례의 개념을 생각할 때 그 의미는 입교
식의 상징적 의미,육체적 영적 부정에서 상징적인 씻음혹은 병의 치유를 위
한 의미 등이 있다. 이런 의미중에 요한의 세례는  하나님나라의  입회식의
성격을 띠고 있으나 쿰란의 성격은 정결에 더 가깝다.

    결론적으로 죄인에 대한 요한의 태도는 그가 쿰란인이 아니었거나 쿰란
의 관점을 완전히 깨뜨렸음을 지시해준다.  이런 상이점이 있음에도 불구하
고 요한의 사상이 쿰란 사상에 친숙한 점은 당시 유대 사상적 맥락에서  볼
때 어떤 경로를 통해서 영향을 받았었다 고 할 수 있다.

      B. 세례 요한과 예수

       예수는 세례 요한으로 부터 세례를 받았고 그를 칭찬한 것으로 보아
예수와 세례 요한의 관련성은 부인될 수 없다. 그렇다면 예수의 삶은  세례
요한의 노선을 따라 전개되었고 그와의 관련속에서만 바로 이해될 수  있는
가? 그러나 초기 전승들은 예수와 요한의 밀접성을 말하면서도  둘  사이를
갈라놓는 간격을 분명하게 설정되는데 세가지 특징에서 구분된다.

    첫째 세례 요한은 광야의 적막한 곳에서 살며 광야라는 활동 지역을 근
거로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 예언자적 삶을 살았다. 반면 예수는  광야를
떠나 이 세상과 정면 대결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셨다. 옷차림도 다
를바가 없었으나 요한은 엘리야와 같이 예언자의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둘째 세례 요한의 운동은 금욕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요한은 포주주
와 술을 마시지 않는 나실인이었다.  그러나 예수는 "잔치 집에 온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 어떻게 금식할 수 있겠느냐?"(막2:19)에서 처럼 그  시대의
종말론적 예언자들과는 달랐다. 이러한 중요한 차이점은 심판과 은혜에  대
한 상이한 이해에 근거한다고 볼 수 있다.

    세째 세례 요한은 진노의 심판에 근거하여 회개의  세례를  요구했지만
예수는 세례를 행하지 않았다. 예수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는 것은 진노의 심판을 선포하는 두려운 소식이 아니라 구
원의 도래를 선포하는 기쁨의 소식이다.  이런의미에서 예수의 회개의 요구
는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를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