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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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약 1: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믿음과 지혜

(약 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약 1: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약 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약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약 1: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약 1: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약 1: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낮은 형제, 부한 자

(약 1:9)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약 1:10)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약 1:11)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시험에 견디어 낸 자

(약 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약 1: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약 1: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약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약 1:16)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약 1: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약 1:18)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말씀을 들음과 행함

(약 1: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약 1:20)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약 1: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약 1: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약 1:23)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약 1:24)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약 1:25)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약 1:26)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약 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본서의 저자는 1장 1절에서 밝힌 대로 야고보이다, 하지만 신약성경에는 야고보가 4명이나 등장하며 초대교회 안에서도 이 이름은 자주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마10:3)와 사도 유다의 아버지 야고보(눅6:16)는 성경에 단 한번씩 언급되었으므로 일단 본 서의 저자에서 제외된다. 그리고 두 명의 야고보 예수의 12제자중의 하나인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행12:2)와 주의 형제 야고보(마13:55, 행1:13, 고전15:7)를 본 서의 저자라고 보고 있다. 먼저 언급한 12제자 중의 하나인 야고보가 본서의 제자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점이 있는데 행12:2에 A.D. 44년경 유대 분봉왕 아그립바1세(Herod Agrippa I, A.D. 39-44) 순교 당한 것으로 기록되었다. 본 서에는 바울의 교리를 잘못 이해한 유대인 성도에게 믿음에 따른 행함을 강조하고 있어 바울의 선교(A.D. 46년 이후) 이전에 기록될 수 없는 내용이므로 주의 형제 야고보라고 불린 예루살렘 총의회 의장 격으로 교회의 지도자적 위치에서 활동한 야고보(행15장)로 볼 수 있다. 또한 행21:17-25, 갈2:12에 나타난 그의 실천적 신앙과 일치하고 있다.

이런 그가 1절에서와 같이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에게 전한 것이다. 당시의 로마 제국의 통치아래서 핍박을 받으면서도 사랑의 교재와 믿음을 잃지 않도록 권면한 교훈적 내용이 많아 '신약의 잠언'이라고도 불린다. 잠언과 유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심(약1:5, 잠2:6)
말에 대한 경고와 당부(약1:19-20, 잠29:20-21)
의의 열매(약3:18, 잠11:30)
세상 자랑에 대한 경고(약4:13-16, 잠27:1)
죄와 허물을 덮는 사랑에 대한 권고(약5:20, 잠10:12)

야고보서의 특수한 언어학적인 문체는 종종 수사학적인 의문법이나 생동적인 직유법(直喩法)과 생생한 예화, 상상적인 대화, 그리고 독자들을 전체 또는 그룹으로 보면서 끊임없이 설득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의 형제들아', '형제들아', '나의 사랑하는 형제들아'와 같은 표현들이 14회 나오고 '너희 죄인들아', '너희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죄인들아', '너희 부한 자들아'는 표현들은 특정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이 책은 주후 60년경에 저술되어 180년경에 번역된 후 특별히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사용했던 헬라어 성경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96년 잠니아회의(the Council of Jamnia)에서 저작자 문제로 제외 되었으나 성도들 간에는 영감 된 책으로 계속 인정받아왔다. 그리고 그 후 A.D. 397년 제3차 카르타고 회의(Council of Carthage)에서 신약 정경으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후에도 잡음이 있었으나 칼빈은 이 책에 대해서 '나는 이론의 여지없이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 책을 배척할만한 이유를 결코 발견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흔히 야고보서를 행위만을 강조한 책으로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시련을 겪고있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지키게 하기 위한 말씀이었지, 결코 믿음 없는 행함을 이야기 한 적이 없다. 이런 주제는 바울뿐만 아니라 베드로 그리고 예수님도 강조하신 것이다.

1:1 문안 인사
1절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 당시에 예수의 신성을 부인한 에비온파(Ebionites)를 생각하여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동일한 선상에서 언급하며 연결하고 있다. 야고보 !Iavkwbo"(야코보스)는 자신이 '종'이 된 것을 자랑스럽게 기쁨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야고보는 예수의 모친 마리아에게서 난 친 동생이며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행15:13, 행21:18).
흩어져 있는 열 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열두 지파'라는 표현은 믿음의 이스라엘을 표현하는 구약서부터 내려오는 용법이다(창49:28, 출24:4, 민1:4). 이스라엘 민족이 흩어지게 된 처음은 열 지파가 포로로 끌려갔을 때 아시리아 제국은 이들을 여러 지역으로 분리시켰다. 그리고 이 제국이 멸망하게 되면서 더 멀리 각지로 흩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또한 번 예루살렘 멸망이후 팔레스틴 이외의 소아시아를 비롯해 다른 지역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믿음의 형제들은 스데반의 순교 이후에 흩어졌다. 이런 집단을 통틀어 '흩어진 무리'(요7:35, 행2:5)라고 표현했다. 여기서도 크게는 흩어진 전체 유대인들을 가리킨다고 보나 가깝게는 스데반 순교 이후에 흩어진 그리스도의 형제들에게 전해진 것이다.

1:2-4 시련을 이기라
2절 내 형제들아 ajdelfoiv(아델포이) "형제"로서 호격 2인칭으로 사용한 이 용법의 단어는 본서에서 15번이나 등장한다(약2:1, 14, 약2:1, 5, 약3:1, 10, 12, 약4:11, 약5:12, 19). 이는 수신자와의 같은 동족 안에서 따뜻한 사랑 애를 느끼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용법은 유대인들 사이에서 같은 형제로서 사용되었다(출2:11, 신15:2).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시험" peirasmoi'"(페이라스모이스)은 "시련, 도전, 역경"으로 내면적인 '시험'이 아닌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시련'(trial)을 말한다. 이러한 시련은 "여러 가지"로 계속해서 만나게되는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가 말한 것처럼 이런 시련이 많을수록 하나님의 은혜 역시 수 없이 풍부하게 나타난다(벧전4:10). "만나거든" peripevshte(페리핖토) "직면한, 둘러싸이다"로 사용되었다. 눅10:30의 강도 '만난'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되었다. 즉 '시련'은 피할 것이 아니라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로 담대히 맡아 이길 것을 강조하고 있다.

3절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시련'을 만날 때 왜 기뻐해야 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결론부터 말하자만 '인내'를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누구나 현재 당하는 고통과 어려움에 대해서 즉시에서 기쁨을 가지라는 것은 무모한 부탁일지 모른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그것은 인내를 만들어 믿음이 견고히 된다면 기쁨이 되는 것이다. "인내" uJpomonhvn(휘포모넨)은 "견고"로 변역해도 좋다. 즉 인내는 우리의 믿음을 견고하고 확실하게 다져주고 있기 때문이다. 롬5:4바울은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라"고 함으로 "인내"를 원인적인 위치에 두었으나 야고보는 "인내"를 시련의 과정을 거친 결과로 보고 있다. 이런 표현은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저자들의 생각에 따라 바울은 시련을 중요시한 반면 야고보는 고난 자체를 중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4절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tevleion(텔레이온)은 '끝'을 말하는 tevlo"(텔로스)에서 파생된 것으로 끝까지 e[rgon(에르곤) "이루라, 수고, 행위"로 참고 견디라는 말이다. 이 단어는 '온전'으로 롬12:2, 고전13:10, 엡4:13, 약1:17, 25, '완전'으로 골2:28에 나온다.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온전" tevleioi(텔레이오이)는 "성년"을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하는 것으로 어린아이와 같지 않고 믿음이 온전한 어른과 같이 성장하는 것을 말한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전13:11)
이 뜻은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5:48)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약1:5-11 지혜가 부족하면 하나님께 구하라
5절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고난을 성도에게 그 고난이 축복이라는 점은 즉시 깨닫기 어렵다. 그리고 그런 중에는 누구든지 지혜를 간구하게 된다. 어려움이 없을 때는 지혜를 요구할 필요가 없다.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지혜를 요구하게 되는데 칼빈은 여기서 지혜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영의 조명을 우리에게 주십사 하고 기도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했다.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후히" aJplw'"(하프로스) "풍성하게"는 '책망하지 않고', '인색함이 없다'는 뜻이 함축된 의미의 단어이다. 저자는 "꾸짖지 아니하시는"으로 독자들을 안심시키면서 구할 것을 요구한다. 사람들의 생각에는 너무 자주 귀찮게 하거나 구하면 오히려 하나님을 괴롭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불식시키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미 간절히 그리고 끈질기게 구할 것을 촉구하신 바 있다(마7:7, 눅11:9).

6절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기도는 어떤 기도이든 간에 믿음으로 드려져야만 한다(마21:21, 막11:24). "의심" diakrinovmeno"(디아크리노메노스) 어근단어인 diakrivnw(디아크리노) "철저하게 분리하다, 구별하다"로 어떤 일을 놓고 실익을 저울질하는 것을 말한다. 영어성경 RSV는 '망설임 없이'로 번역했다.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요동" rJipizomevnw/(리피조메논) "바람에 요동하는" 이리 저리 움직이는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심리적으로 두 마음을 품은 상태를 말한다(행10:20).

7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본 절의 처음에 mh; (메)가 있음으로 문장 전체를 부정하고 있다. 그리고 다음에 ga;r(가르)로 "그러므로, 왜냐하면"으로 연결되어 앞 절의 '요동하는 사람, 의심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8절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두 마음" divyuco"(디프쉬코스)은 성경에서 이곳에서만 나오는 단어로 야고보가 만들어낸 용법으로 보이며 이후에 교부 시대에는 이 단어가 계속해서 사용되었다. 이 단어와 더불어 "정함이 없는" ajkatavstato"(아카타스타토스) "변덕스러운" 뜻으로 기도할 때뿐만 아니라 다른 일에도 신뢰를 가질 수 없는 상태의 사람을 말한다. '두 마음'이란 '세상의 욕심'과 '하나님의 나라의 일'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음을 말한다.

9절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낮은" tapeino;(타페이노)는 '굴욕감을 느끼는 초라한 신분'을 말하는 것으로 물질적으로나 세상의 신분이 종과 같은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모든 성도는 동일한 시민이다(엡2:19). 아울러 세상의 신분에 매여 있는 자들에게 굴욕적인 사람을 살 것이 아니라 "높음" u{yei(휩세이) 즉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적 자녀 됨의 신분을 말한다(요15:15, 계3:21).

10절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부에 대해서는 절대 자랑할 것이 못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원한 것도 아니요 궁극적으로 자신의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칫 물질과 세상에서의 신분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도 특별한 존재로 착각하기 쉬운 것이 부한 자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안에서는 이것을 경계할 것을 권면한 것이다. 비슷한 경우로 예수께서 "재리의 유혹"(막4:19)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성경에서 자주 사용된 표현으로 부자가 영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랑할 것이 못됨을 일깨워 준다(시102:11, 사40:6, 7, 고전7:31, 벧전1:24).

11절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우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같이 쇠잔하리라 저자는 이사야 40:7-8절을 인용한 것으로 보이는 표현으로 인간의 짧은 생에는 '풀의 꽃'으로 시들어지는 연약성을 지적한다.
"뜨거운 바람" kauvswni(카우소니)는 사하라 사막에서 불어오는 '시로코'라는 뜨거운 남동풍으로 이 바람이 불어오면 곧장 채소와 식물들이 말라죽곤 하였다(욥1:19, 눅12:55). 이 단어는 마20:12비유에서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더위"에도 사용되었다.

1:12-15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다
12절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러한 용법은 성경에서 흔히 사용된 것(시1:1, 32:1, 잠8:32, 34, 사56:2)으로 예수께서도 사용하셨다(마5:3-11). "시험" peirasmoi'"(페이라스모이스)은 2절에서 사용한 "시련"과 같은 단어로 시험보다는 [시련]으로 번역되는 것이 좋다. 본 절은 2-11절과 연결된 것이며 13절의 '시험'(temptation)과는 다른 뜻이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인정하심을 받은" dovkimo"(도키모스) "인정된, 입증된"의 뜻으로 3절에서 사용된 단어와 같으며 금속물을 불에 단련시켜서 얻어낸, 제련된 것을 말한다.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은 통치자의 왕관이나 고전9:25의 상급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우리의 죄가 대속 되고 이후에 부활하신 새 생명을 말한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11:25-26)

13절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찌니 "시험" peirazovmeno"(페이라조메노스)은 2, 12절에 나오는 '시련'(trial)과 다른 '유혹'(temtation)을 말한다. !Apo; qeou'(아포 데우) '하나님으로부터' 시험의 근원, 시작점이 하나님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다. 사람들은 시험을 받을 때 자신이 아브라함이나 욥처럼 하나님에 의해서 시험받는다고 생각하곤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이 시험을 허락하신 적은 있지만 하나님 자신이 악한 시험의 근원이 될 수 없으며 2, 12절에서 말한 그런 시련을 주시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악한 시험을 만드시지도 않으셨으며 또한 그런 시험(유혹)을 하지도 않으신다. 아울러 하나님 자신도 그런 시험을 전혀 받지도 않는다.

14절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그렇다면 이런 시험의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욕심" ejpiqumiva"(에피뒤미아스) "악한 것에 대한 열망"(롬7:17-23, 갈5:16-21, 엡2:3, 살전4:5)으로 "미혹" deleazovmeno"(델레아조메노스)되기 때문이다. 이 뜻은 "함정에 빠지다"로 사냥할 때의 올가미나 함정, 낚시할 때 물고기를 유혹하는 낚시 밥에 물려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것을 뜻한다.

15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야고보는 여자가 아이를 임신하고 낳는 것을 비유하여 죄가 욕심으로 생겨난다는 것을 설명한다. "욕심이 잉태한즉"은 문학적인 표현이고 "죄를 낳고"는 의학적인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야고보는 죄는 어떤 특정한 하나가 죄가 아니라 죄는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생겨나게 되고 이것은 점점 커져서 결국은 사망에 이른다는 점진적 단계로 설명했다. "장성한즉" ajpotelesqei'sa(아포텔레시데이사) 성경에서 여기서만 언급된 단어로 야고보가 죄의 결과로 이끄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한 단어로 만들어 사용한 것 같다. 이 뜻은 "결국은 끝내다, 마치다"는 말로 RSV에서는 '종착역에 다다르면'이라고 번역했다. 표준새벅역과 현대인의성경은 '죄가 자라면'이라고 했다. 좀더 의역한다면 [죄가 성장하여 결국은] 또는 [죄가 성장한 끝은]이라고 해도 된다. "죽음" qavnaton(다나톤)이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요8:51)와 대조되는 말씀이다.

1:16-18 모든 것의 창조자요 증여자이신 하나님
16절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말라 Mh;(메) "...하지 말라" 기본 불변사로 금지를 말하는 완곡 어법이다. "속지" plana'sqe(플라나스데) "방황하다, 빗나가다, 죄를 짓다"인데 같은 단어로 고전15:33, 갈6:7에 사용되고 '오해'(마22:29, 막12:24, 27)로 '미혹'(골6:9)으로도 사용되었다. 야고보는 "사랑하는" ajgaphtoiv(아가페토이)로 사용하여 하나님의 사랑으로 따뜻한 위로와 간절함으로 권면한다.

17절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선물" dovsi"(도시스)는 dovs(도스) "주다"(마6:11)에서 나온 말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행동을 말한다. 13절과 대조되는 말씀으로 하나님은 악한 것으로 시험하지 않으시며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온전한 선물"이다. 온전한 것은 오직 하나님이시며 그분에게서 오는 것뿐이다(약3:15, 요3:31).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헬라어의 oujk e[ni(우카 엔)은 "전혀 아니다. ...이"로 어떤 변화의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뜻이다. e[ni(우카)는 직설법 현재형으로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그러하시다는 뜻이다. 세상에 비추이는 태양과 달은 회전(자전과 공전)하면서 그림자가 나타나며 어두운 밤도 되지만 하나님은 참 빛이시므로 변화가 없으시다(말3:6, 요일1:5).

18절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우리를" hJma'"(헤마스)가 두 번 나오는데 첫째는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셨다는 뜻이다(엡1:4-5). 둘째는 초대교회 야고보 시대의 성도들에게 은유적인 표현으로 구약의 '첫 열매'(레23:10)가 하나님께 드려졌던 것처럼 드려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용법은 소중하고 먼저 흠 없이 드려지는 제물에 사용되었던 것이다.
"뜻을" boulhqei;"(불레데이스) "의도하다, 결의하다"로 원문에는 이 단어가 본 절에 맨 앞에 나타난다. 이 뜻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고자 하는 의지가 담긴 단어이다(엡1:11, 벧전1:3).

1:19-27 성내기를 더디 하라
19절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알거니와"는 원문에 사본에 따라 차이가 있게 나타난다. 하나는 $Wste(오이테)로 명령법으로 나오고 다른 사본은 #Iste(이스테)로 직설법으로 나타난다. 어떤 사본을 따르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개역성경의 "알거니와"는 #Iste(이스테)로 번역한 것이며, 현대인의성경은 '이것을 명심하십시오'로 $Wste(오이테)를 옮겼다. 우리는 두 경우를 모두 생각하여 수신자들이 알고 있었고 또 그것을 다시 명령한다고 볼 수도 있다. 저자는 본 절에서 세 가지로 지켜야 할 것을 권면한다.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하고 하나님의 말씀 듣는 일은 미룰 것이 아니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언제나 들어야 한다.
말하기는 더디하며 말을 더듬거리라는 뜻이 아니라 짧은 생각에서 쉽게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정확하게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성급함을 경계해야 한다.
성내기도 더디하라 "성내기도" ojrghvn(올겐) "충동, 격노"로 생각 없이 충동적인 화냄을 말한다. 골3:8의 '분과'같은 단어이다.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20절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성내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아니며 고전13:4 '사랑은 온유하며'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다.

21절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야고보는 더렵혀진 옷을 벗어버림과 같이 "더러운 것" rJuparivan(흐뤼파리안) "불결한, 부도덕한" 악을 내어버리라고 권면한다.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기'(사64:9) 때문이다. "넘치는" perisseivan(페리세이안) "남은 것, 과다 량"을 말하는 것으로 두 가지 의미로 볼 수 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는 흘러 넘치는 것과 같이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사1:18) 많은 상태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회개하고 난 후 이 죄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완전히 속죄가 되었다. 하지만 남아있는 '성내는 것'과 같은 죄가 아직도 있다는 것이다. 이것까지 모두 벗어 던져 버릴 것을 권면한 것이다.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도" lovgon(로곤) "말씀"이 이미 마음에 심겨졌다. "마음에 심긴"은 사람의 마음에 말씀이 떨어질 때 성령께서 도우심으로 말씀을 받고, 뿌리가 내리고, 토양을 뚫고 나와 '성령의 열매'(갈5:22)를 맺는 것을 말한다. 이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능히" dunavmenon(뒤나멘온) "할 수 있다"는 현재형으로 사용되어 지금 구원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한다.

22절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원문에 본 절 처음에 나오는 Givnesqe(기네스데)는 "너희는 ...임을 확신하라"는 뜻이다. 말씀을 "듣는 자" ajkroatai;(아크로아타이)는 정기적으로 설교나 강의를 들었으나 제자가 되지 못하는 자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자는 스스로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는 것이다. 즉 선을 알고도 행치 않는 죄를 범하는 것이다(약4:17).

23절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말씀을 듣고도 행치 않는 자에 대해 은유적인 표현으로 자신의 얼굴을 거울로 "보는" katanoou'nti(카타노운티) '뚫어져라 쳐다보는'사람에 비유했다. 당시의 거울은 유리가 아닌 동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아무리 자세히 들여다보려고 노력을 하지만 어른어른 거리는 자신의 모습처럼 확신이 없는 상태를 가리킨 것이다.

24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단순히 말씀을 듣고 간 사람은, 동으로 만든 거울로 자신을 들여다보는 사람과 같이 자신의 모양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고 곧 잊어버린다. '잊다, 무관심하다' ejpelavqeto(에펠라테토)로 단순 과거형을 사용하여 처음부터 말씀에 큰 관심 없이 대충 듣고 곧 가서 쉽게 잊어버리는 사람이다.

25절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 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본 절 처음에 oJ de;(호 데)로 24절을 가리키며 '그러나'로 대조하여 설명한다. "들여다 보고" parakuvya"(파라쿺토) '몸을 안으로 굽혀'인데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사람을 말한다. 어떻게 실제로 말씀을 적용할 것인가, 실천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말씀을 보는 자 이다.
"자유" ejleuqeriva"(엘류데리아스)는 "복음"을 가리킨다. 예전의 율법은 자유가 아닌 강제적인 법이었다. "온전한 율법"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한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속에 새겨 놓으신(렘31:33) 새로운 언약의 율법 즉 '복음'을 말한다.

26절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경건하다" 이 단어는 성경에서 본 절에서만 나오는데 qrhsko;"(드레스코스)는 '기도문을 중얼거리며 종교적인 의식에 빠져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예수께서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시던 것을 연상케 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마16:6)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재갈 먹이지" calinagwgw'n(칼리나고곤)는 말을 나오는 데로 하는, 절제되지 않은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마15:8, 사29:13)와 말씀을 생각하게 한다.

27절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para; tw'/ qew'/(파라 토 데오) 문자적으로는 '하나님의 편에 서서'이다.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26절의 '경건'은 반대로 더러운 경건이라는 뜻이다. "고아와 과부"는 세상에서 제일 소외된 사람들로 언제나 돌보아야 할 대상으로 나타난다(시68:5). 예수님과 과부와의 기사는 마12:42-43, 눅21:2-4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고 한 것과 눅2:36-37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 매우늙었더라 ... 과부 된지 팔십 사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와 눅4:25-26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세 해 여섯 달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을 인용한 것과 눅7:12-13 "성문에 가까이 오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그 어미의 독자요 어미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의 나인성의 과부와 눅18:3의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기도의 열심을 촉구하는 비유에서 사용하셨다.
또한 예수께서도 우리를 요14:18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고 약속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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