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전도종족 기도정보
힌두교 소개

4장.
인도에서의 기독교 사역 - 역사적 전망


[IMAGE] 인도 땅에서의 기독교 전파는 거의 기독교 초기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유럽의 열강들이 1500년대 초에 이 아대륙을 식민지화하기 시작했을 때, 네스토리안 기독교가 이미 인도 남부해안 특히 고아와 케랄라에 퍼져 있었다. 사도 도마가 실제로 그 교회를 세웠는가 하는 것은 불확실하지만, 그 교회는 "성 도마 기독교인"이라고 불려졌었다. 오늘날 그들은 아직도 케랄라에서 1백5십만명의 시리아 정교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포르투갈인들이 1510년에 고아에 정착했을 때, 그들이 해야 할 첫번째 임무 중의 하나는 네스토리안들을 로마 카톨릭으로 개종시키는 것이었다.

교구가 1534년에 세워졌으며, 포르투갈 행정당국은 개종한 네스토리안들을 이슬람 침략자들로부터 군사적으로 보호해줄 것을 요청했다. 수만명에게 세례를 베풀었다는 소식이 유럽에 전해지자, 프란시스 사비에르(Francis Xavier)를 포함하여 카톨릭의 선교사역이 물결같이 시작되었다. 사비에르는 5달 동안 고아에서 사역했으며, 이 도시의 감옥 3개와 병원에 주로 중점을 두었다. 고아에서 코로만델 해안으로 옮겨간 후, 사비에르는 십계명과 주기도문을 다른 로마 카톨릭의 기도문과 함께 타밀 혼합어로 번역했으며 첫번째 달에 1만명의 개종자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카톨릭이 1세기 이상 동안 인도에서 선교를 하던 유일한 원동력이었지만, 그들의 영향력은 유럽에서 일어난 사건과 교회 위계조직의 부패 때문에 결국 사라져갔다. 1700년대 대부분 동안, 선교사역은 네덜란드의 작은 식민지인 트란케바르와 세람포르에서만 적극적으로 고무되었다. 네덜란드 할레 선교회(the Danish Halle Mission)의 루터교 선교사들이 처음으로 1706년에 트란케바르를 향해 출발했는데, 그들은 하인리히 플루차우(Heinrich Plutschau)와 바르톨로메 지게발크(Bartholomaes Ziegenbalg)였다. 두 사람은 타밀어를 빠르게 습득했으며 성경 번역작업에 착수하여 마침내 타밀어로 된 신약성경을 완역했다. 지겐발크는 그 사역의 결과로 영국인 감옥에서 넉 달을 지냈다. 플루차우는 1711년에 유럽으로 돌아갔으며, 지겐발크는 그의 선교의 마지막 해에 최소한 350명의 개종자를 낸 후 1719년에 트란케바르에서 사망했다. 할레 선교회는 그 후 120년 동안 사역을 계속했다.

성공회 신부들이 영국 시민들을 돌보기 위해 인도에 있긴 했지만, 인도에서의 영국인들의 선교는 18세기 말경이 되어서야 시작되었으며 그것 마저도 네덜란드령에서였다. 윌리엄 캐리(William Carey)는 캘커타에서 사역하는 것이 거부당한 채 1799년에 인근 네덜란드령 식민지인 세람포르로 추방당했다. (그러나 선교사들은 마침내 1813년에 영국령 인도에서 제한적인 접근을 허락받았으며 캐리가 죽기 전 해인 1833년에 무제한 접근을 허락받았다.) 캐리는 윌리엄 워드(William Ward)와 조슈아 마쉬맨(Joshua Marshman)과 함께 전도와 교육, 성경번역, 사회개혁의 사역을 했다. 그들은 최소한 36개 언어로 성경의 일부를 번역했으며, 개신교 선교의 2가지 중요한 원리를 세우게 되었다. 즉 선교사와 새로운 개종자들은 평등해야 한다는 것과 선교는 스스로를 지탱하기 위해서도 애써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령 인도가 선교에 문을 열게 한 것 이외에도, 캐리의 위대한 승리 중의 하나는 남편의 장례식에서 아내를 태워죽이는 사티(Sati)라고 하는 힌두교의 순장의식을 영국령에서 불법화시켰다는 것이다.

1813년에 영국령 인도가 선교사들에게 문을 열면서, 미국인 선교사의 물결이 새로 안수받은 목사들과 함께 살렘, 오레곤에 밀려들기 시작했다. 고든 홀(Gordon Hall)은 봄베이에 온 최초의 미국인으로 여겨진다. 그가 도착 후 바로 사무엘 노트(Samuel Nott)와 사무엘 뉴웰(Samuel Newell)이 합류하여 미국 침례교 선교부의 첫번째 선교기지를 세웠다. 그들 3명에게 다시 루터 라이스(Luther Rice)와 아도니람 쥬드슨(Adoniram Judson)이 합류했다. 쥬드슨은 영국령 버마로 갔고, 라이스는 미국으로 되돌아가 선교의 중요성을 옹호했다. 1815년에, 노트는 봄베이에서 단 3년만을 보낸 후, 건강문제로 떠났고 뉴웰은 1821년에 콜레라로 사망했으며, 홀은 1826년에 봄베이에서 사망했다. 그들은 함께 신약성경을 마라티어로 번역했으며, 봄베이에 선교의 문을 열었다.

20세기 전반기에도 뛰어난 선교사들이 인도에서 그 역할을 감당했다. 메리 리드(Mary Reed)는 1885년에 인도에 도착했다. 경미한 병을 앓은 후, 나병환자 수용소에서 회복하기 위해 히말라야 산맥으로 갔는데, 1890년에 휴가차 미국으로 귀국해서는 문둥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녀는 인도로 돌아가서 1943년 사망 때까지 나병환자 수용소에서 사역했다. 에이미 윌슨 카미클(Amy Wilson Carmichael)은 일본에서 15달 동안 사역을 하다가 1895년 남인도로 갔는데, 그녀의 중심 선교사역은 어린이들이었다. 1931년에 그녀는 다리가 부러지는 바람에 절름발이가 되어서 경건서적을 저술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인도에는 약 900명의 국적을 포기한 기독교 사역자들이 있다. 인도인의 2.5%에서 4% 정도, 즉 약 2천만에서 3천만의 사람들이 명목상 기독교인이다. 1986년에 인도 교회는 전도자와 교회개척자로 약 4,200명의 인도인들을 파견한 것으로 추산되었다. 이것은 그 이후로 더욱 증가하였고, 주요 교회 개척사역은 인도의 미전도종족 가운데 행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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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Frontiers Focus" 1권 3장에서 발췌한 것이며 허락 하에 사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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